Gwangju Students Independence Movement
광주학생독립운동 사적지 소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1926년 비밀결사인 성진회와 1929년 독서회 조직에 가담하고,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곳이다. 광주고보 학생들은 1920년대 들어와서 민족차별교육에 저항하는 동맹휴학을 계속 일으켰으며, 1926년 11월 비밀결사 성진회, 1929년 6월 졸업생 장재성의 지도로 독서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조직적인 기반 위에서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전남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어 194개교, 54,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학교건물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이 건립되어 있다.
1929년 11월 1일과 3일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양측 학생들의 충돌이 일어나자 11월 1일에는 광주역에 광주고보생과 일본인 학생인 광주중학생 수십명씩이 모여 철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이어 11월 3일에는 광주 시내 수기옥정 우체국 앞에서 양교 학생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 격투가 벌어졌으며, 이 소식을 들은 양쪽 학생 수백명이 광주역 앞에 모여 집단난투극이 벌어졌다. 광주역은 1969년 7월 25일 광주시 북구 중흥동에 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당시 자리에는 현재 광주동부소방서가 들어서 있다.
1929년 11월 1일과 3일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양측 학생들의 충돌이 일어나자 11월 1일에는 광주역에 광주고보생과 일본인 학생인 광주중학생 수십명씩이 모여 철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이어 11월 3일에는 광주 시내 수기옥정 우체국 앞에서 양교 학생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 격투가 벌어졌으며, 이 소식을 들은 양쪽 학생 수백명이 광주역 앞에 모여 집단난투극이 벌어졌다. 광주역은 1969년 7월 25일 광주시 북구 중흥동에 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당시 자리에는 현재 광주동부소방서가 들어서 있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동참하여 시위를 벌인 곳이다. 11월 12일 시위 때는 정문 폐쇄로 교내 기숙사에서 독립가를 부르고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하였다. 1930년 1월에는 투옥 중인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3학년생들이 백지 답안을 제출하는 시험거부 투쟁을 벌였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현재 전남여자고등학교로, 195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비를 건립하여 학생들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1929년 조직된 독서회 중앙본부의 거점인 김기권 문방구점이 있던 곳이다. 1929년 6~7월 장재성의 지도로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에 독서회가 조직되었고, 다시 이들을 총괄하는 독서회중앙본부가 결성된 장소가 김기권 문방구점이었다. 김기권은 광주고보 출신으로 1928년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처분을 받았는데, 독서회원은 아니었으나 문방구점을 경영하며 이들을 후원하였다. 이곳은 독서회 회원들의 회합 및 연락장소로 이용되었다. 문방구점은 독서회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안정적 거점의 확보라는 점에서 중요하였다.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 금남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